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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지식/생활상식

웨딩드레스가 하얀 이유는? 바로 이 사람 때문 빅토리아 여왕의 영향

by 하루발전 2022. 7. 7.

요즘 결혼식이 참 많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미뤄왔던 결혼식이 엔데믹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식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지만 가장 설레고 주목받는 사람은 신부가 아닐까 합니다. 결혼식의 신부하면 하얀 웨딩드레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면서 결혼식=드레스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사실은 웨딩드레스가 흰색이 아니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언제부터 왜 웨딩드레스가 흰색이 되었는지, 하얀 웨딩드레스가 결혼식의 상징이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웨딩드레스는 하얀색이 아니었습니다. 노랑, 파랑, 초록, 심지어는 검정색도 있었습니다. 이는 여러 문헌과 문학 작품에도 서술되어 있지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을까?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영국 여왕 빅토리아부터 입니다. 

그 당시 영국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세계 어디든 영국의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였지요. 오늘날에도 영연방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인도 등 53개 국가로 이루어진 영연방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로 구성된 연합체입니다. 이 중 10여 개의 국가는 영국 여왕이 국가 원수 자리를 겸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세계 최강국이었죠.

이러한 영국에 18세로 여왕에 등극한 빅토리아 여왕은 전세계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중 최대 관심사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 누가 될까였는데요. 여러 국가의 왕자들이 후보에 올랐지만 그녀는 독일의 삭스 코버그 공국의 알베르트 왕자를 선택하였습니다. 단 두 번 만에 결혼을 선포했다고 하네요.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빅토리아 여왕정도면 머릿속에 상상하는 결혼식을 실현하는 것을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녀가 선택한 결혼식은 '순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하얀 드레스를 선택했습니다. 결혼식도 흰색으로 꾸몄으며 신부 들러리로 초청된 12명의 공주들도 모두 하얀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신랑인 앨버트 왕자가 선물한 파란색 브로치 말고는 결혼식 모두가 흰색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흰색으로 표백하기가 더 어려워 흰색 원단이 더 비쌌습니다. 거기에 결혼식 이후에도 예복이나 일상복으로 입어야 했으니 일반인들이 드레스로 흰색을 선택하기는 어려웠죠.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20 세기 들어서 표백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흰색 원단의 가격기 많이 내려오게 되었고 사람들은 빅토리아 여왕을 따라 흰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순탄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결혼 생활을 보고 바라는 마음도 컸겠지요. 거기에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선보이면서 더욱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관습이나 유행을 따르는 밴드왜건 효과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가 유행을 따르는 이유 밴드왜건 효과

 

우리가 유행을 따르는 이유 밴드왜건 효과

여러분은 유행에 민감한 편이세요? 패션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가끔 지나가는 길에 나와 같은 옷을 입은 분들을 보시기도 하지 않으신가요? 한 때 남성들 사이에 유행했던 모나미 룩, 밖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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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빅토리아 여왕의 효과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세일러 복장을 입힌 것도 빅토리아 여왕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에게 해군복을 선물했는데 이를 입고 공식행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를 안 해군복 납품 업체는 어린이용으로 변형하여 공급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세일러복이 대 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왜 결혹식 드레스가 하얀색이었는지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했었던 밴드왜건 효과와도 연결이 되어 있네요. 왕족과 여왕이라는 이야기는 뭔가 동화 속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이야기면서도 수많은 곳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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